관중들 중에서 특히 여성들은 그의 꽃미남 용모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상당수 여진족 여인들은 젖가슴을 여사로 내어놓고 다니는데, 그녀들로서는 나르는 융단을 타고 오는 페르시아 왕자들 보다 더 가까운, 백마 타고 오는 거란 황태자가 더 실감이 난다. 따라서 한 거란 꽃미남의 등장은 마음에 와 닿는 남자가 있으면 축제 기간 중 육탄돌격도 마다하지 않을 그녀들의 야성을 건드렸다. 다만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므로, 저 사람이 바로 그 황태자 본인으로 백마 바부르를 탄 야율돌욕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는 관객들의 변별력이 문제될 뿐이다. 고정임은 만족의 미소를 몰래 지었다.

돌욕에게서 초선을 받아 쥔 금위대장 살갈薩葛이 한 쌍의 장검을 건네주었다. 검은 달빛에 날이 새파랗게 빛났다. 검무자는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무대를 걸어 나가 자리를 잡았다. 신앙심 깊은 수도승처럼 과묵하다. 그러나 검무복은 황동색과 주홍색이 섞인 화려한 군복으로 번쩍거리면서 그의 성적 매력을 뿜어내었다. 그러나 돌욕의 그런 매력은 위험하게 새파란 빛을 뿜고 있는 칼이 내는 무자비함과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작 가 김산
작 가 김산

관중들은 도대체 이 사람이 성적 매력과 칼의 무자비함과 구도자의 과묵함, 이 세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킬지를 궁금해 하며 긴장했다. 사회자가 이 춤은 신라의 귀족 금일지金日芝가 남긴 춤으로 후에 금유신의 낭도 황창랑黃倡郞이 계승하고, 다시 왜국倭國으로 가서 검도의 원형이 된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나 신라 궁중에서 추는 ‘황창랑무’와는 별개라고 그는 두 번이나 강조했다. 이어 그 춤을 출 사람은 구름에 의탁하여 화폭에 흰 달과 맑은 샘물을 표현해내는 탁운거사托雲居士라는 분이라고 소개를 하고 무대를 내려갔다. 이제는 주객이 전도되어 고정임이 춤을 감상할 차례다.

탁운거사라고 소개 받은 돌욕은 양쪽 손에 칼을 잡고 처음은 기본 동작으로 몸을 풀더니 곧 날렵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과 회전수는 고정임 이상으로 정확히 계산된 것이었고, 그의 몸놀림도 검무의 그것으로 일정하게 규정된 것이었다.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 그래서 최고 수준의 예술을 말할 때 ‘자연스럽다’고 하지 않는가? 검무도 예술인 이상 자연에서 따 올 수밖에 없다.

 

  • 부드러움으로 시작했다. 칼은 정의正義를 잡아주는 것도 되지만 무고하게 사람을 살상하는 것도 될 수 있으므로 우선 관객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한다. 현란하게 휘두르는 칼날이 매순간 관객들 자신의 심장을 찌를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없애줄 때, 오히려 그 대조효과로 의외의 큰 감동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봄바람이 수양버들을 흔드는 것을 본 딴 검무 동작이었다. 초심자는 큰 그림만 그리지만 대가는 오히려 작은 세부사항으로 승부를 건다. 탁운은 춤만 추는 게 아니라 구도求道의 길을 가는 자신의 내면을 세밀하고 정확히 전달해 관객의 마음을 흔들었다. 사람들은 칼이 실제의 수양버들과 미풍보다도 더 부드러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고는 탄성을 발했다.

승承은 일종의 몰개성沒個性이었다. 그는 두 팔 소매를 양쪽으로 쭉 펴드니 칼을 가로로 뻗혀 들고 앞뒤로 세 번, 좌우로 세 번을 바람같이 달리며 민활하고 날쌘 모습으로 제비가 물을 차는 춤 동작으로 시작했다. 이어 칼이 허공에서 빗발치듯 번뜩거리며 보는 사람의 눈을 현란케 하는 조자룡 검무를 췄다. 갈수록 더 빨라지는 동작이었다. 검무자 탁운거사가 조자룡과 정면으로 부딪쳐서 끝까지 간다는 각오로 임하자 드디어는 자룡이 검무자의 살갗을 뚫고 안으로 들어와 탁운을 죽였다. 그러자 세상이 조자룡이라는 칼춤의 대가에게 기대하는 그것, 소위 ‘전통’에, 검무자가 완전히 접맥이 되었으며, 검무자의 개성이 사라지고 탁운이 바로 조자룡이 될 때는 주위가 가을 물처럼 고요해졌다.

 

이윽고 춤은 전轉의 단계로 넘어갔다. 검무자는 비인간화非人間化를 꾀했다. 학이 환희에 차 훨훨 춤추는 동작으로 시작해서, 맹호가 위용을 자랑하는 춤을 출 때는 이제 사람이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없어지고 맹호가 춤을 추더니, 이어 그것도 없어지고 칼만이 춤을 추는 비인간화非人間, 즉‘배俳[非+人=俳]우’라는 목표점에 가 버렸다. 칼날에 반사된 달빛이 이따금씩 캄캄한 허공에서 섬광처럼 번뜩였다. 검무자가 순환되는 박동의 꼭짓점에서 우뚝 서는 모습은 얼음의 제국 하얼빈에서 순간적으로 덮치는 혹한에 흑룡강의 파도가 쳐 오르던 상태 그대로 굳어져 나선형의 빙정 장관이 연출되듯, 보검에서 번뜩이던 서리 빛도 함께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그러자 비로소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관객들은 푸른 뱀이 백번이나 가슴을 휘감는 듯 소름이 확 돋을 정도로 검무가 몸에 와 닿았다.

 

마지막인 결結이 있었다. 그런데 탁운은 가장 어려운 과정인 용이 여의주를 조종하는 춤에 이르러서는 연결 동작에 미세한 덜컹거림이 있었다. 사실은 칼의 움직임도 없이 그저 소리만이 있고, 그것은 마치 신이 동굴 속에서 지상에 내리는 목소리 같아야 한다. 오직 소리로만 들려야 한다. 결론적으로 그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매끄럽게 대미를 장식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고정임이 했듯, 다시 처음의 단계와 같이 부드럽지만 그 보다 한 차원 높은 춤으로, 선회하는 송골매가 점점 큰 원을 그리면서 마침내 다음을 기약하고 용퇴하는 것으로 대장정을 마쳤다.

 

돌욕은 비인간 단계인 ‘구도자의 춤’을 뛰어 넘어, 처음으로 칼만이 춤을 추는 ‘신 앞에서의 춤’을 추었다. 그러나 소리만이 남아있는 단계와 그 소리마저 없어지고 우주의 정지점에서 성령만이 충일한 단계인 ‘신의 춤’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그의 몸은 그제야 모든 땀구멍들이 열리며 땀이 솟아났다. 묘한 쾌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돌욕이 이런 완결을 보게 된 것은, 그가 부여정변 후 그것을 초월하기 위해 기울인 각고의 노력이 그의 정신을 한 단계 고양시킨 데다, 원시림을 이루고 있는 주위의 자작나무 숲이 주는 정수精髓를 돌욕이 완벽하게 흡수한 것도 한 몫 거들었다. 미세한 차이가 그 작품의 완결성에 미치는 영향은 대가들에게는 나비의 날개 짓 연쇄와 같다. 개별나무로서의 자작나무는 그 껍질들이 눈처럼 하얀 승마용 바지에 검은 점이 박힌 쇠 비늘 갑옷을 걸치고 있는 것 같다. 덩굴들이 뻗어 자라는 온대의 숲과는 달리, 이곳의 자작나무들은 수직으로 꼿꼿하게 서서 검을 들고 질서정연한 간격으로, 발해정복전의 군대처럼, 진군하는 숲이 되어 치고, 찌르고, 뛰고, 구르며 돌욕을 도왔기 때문이다. 군중도 거란인에 의해 길들여져 거란 국적을 가진 숙여진이 되었음인지 자신들의 심리 기저에서 용솟음치는 기氣를 돌욕의 춤에 찬미와 경탄, 환호의 소리로 모아주었다. 그것은 밀려오는 파도가 자작나무 수해를 시원하게 흔들고 지나가는 소리 같았다. 군중의 환호 속에서 돌욕은 순간 이런 생각이 잠깐 스치기도 했다. 칼춤의 쌍칼 대신 언어의 쌍칼로 인간 삶을 깊숙이 찔러 밑바닥에서부터 천천히 끌어올리는 시인의 고뇌를 표현하는 춤을 하나 만들 것이라고.
 

정임이 보기엔 열흘 전 첫 대면에서 이미 돌욕이 예술에 천재적 재능이 있는 사람임을 간파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 돌욕은 처음에는 춤출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나름 춤에 대한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 같았으므로 객기를 한번 부려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돈 많은 거란 군인, 귀족 더 나아가 백마 탄 거란 황태자를 노릴 의향이 있다는 걸 숨기지 않고 당당히 겉으로 드러냈었다. 그래서 그 남자는 정임이 춘 발칙한 유혹의 춤이 진정에서 우러나온 것인지를, 속된 말로, ‘간 보려’ 하다가, 그녀에게 제대로 낚인 셈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돌욕은 이미 자신의 몸에 들어찬 발군의 도약과 회전력, 긴 체공시간, 몸 자체가 바로 시詩인 극적인 표현력을, 따로 준비가 없었더라도, 바로 검무로 연결시켜버렸다. 그녀는 마음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돌욕의 춤은 그녀가 진입할 수 없는 구도자의 춤이므로 자신의 스승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이기 때문이다. 얼굴을 마주 대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어도 마음 사이엔 천개의 산이 있지만, 분명 자신과 저 사내는 떨어져 있지만 지금 이 순간도 소통이 되고 있다고 그녀는 확신하고는 또 한 번 만족의 미소를 몰래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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