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양 차가울 것만 같던 한밤 달빛도 서서히 달아올랐다. 달빛 줄기가 한 대접 정화수에 몸을 풀 때처럼 계곡의 원형 축제장에 한 올 한 올 읽을 정도로 강하게 스며들었다. 오늘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음풍농월로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얼빠지게 감탄사나 토해내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낙원도, 그렇다고 마냥 버러지가 사는 고통의 무대인 자연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탄탄히 두 발을 딛고, 자연을 삶의 일부로 해서 굳세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생활의 일부로서 정해진 과정의 축제가 마지막을 달리고 있다. 춤이란 계속 뜨거워야 한다. 갑자기 달빛이 숫돌에 갓 갈아낸 칼날처럼 싸늘하게 벼려져 주위에는 음산함이 깃들고 연인의 코에 열정대신 찬바람이 들어가버리면 축제는 이미 파장이다. 축제에서 가장 꺼리는 그런 불미스런 일을 당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이미 ‘우리’라는 영교에 근접하는 공동사회를 형성한 축제 무리들 사이에 일고 있었다. 그것은 빈주의 오월 축제의 밤을 달빛아래 자작나무와 잉걸불을 사이에 두고 둥근 원을 다 같이 도는 발해의 ‘답추踏鎚’로 이어지도록 했다.

우선 참가자들이 돌아야 할 원의 가운데는 자작나무가 서 있고 역시 자작나무 장작불과 자작나무에서 따온 차가버섯을 태워 만든 숯불이 이글거리고 있다. 밀랍에 실 심지를 꼬아 박은 촛불이 타고 있다. 그것으로 모든 준비 작업은 끝이다. 행사 주관자가 장작불에 답추의 시작으로 검은담비의 털을 태웠다. 그것은 향으로 피어올라 하늘과 통하게 된다.

그 동안 보름달이 주는 상상력 속에서 밤의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음식, 그중에서도 술은 그것이 몇 순배나 돌면서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열게 했다. 특히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고정임․탁운거사 라는 두 사람의 춤으로 사람들은 한껏 고양되어 자신들이 천상에 있다는 환상에 빠졌다. 여기다 이미 눈뿐이 아니라 마음까지 맞춰놓은 연인과 함께 육욕이 깃든 밤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달콤함은 그들을 ‘우리’라는 끈으로 묶는 아라비아 문자이면서 메카의 아라파트 언덕에 선 순례단의 환희로 바꾸어주었다. 탁운과 정임도 검무와 호선무를 통해 일로 가득 찬 삶은 놀이로만 구원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제 답추에서는 더 이상 추상적인 가치價値는 좆지 않기로 했다. 그냥 답추, 그 속에 몰입하고 싶었다.

 

작가 : 김산
작가 : 김산

답추라는 것은 활기 없고 비사교적으로 자기 혼자 헤매는 그런 류의 가무와는 근본 다르다. 흥겹고 집단적이고도 정력적인 것으로 무엇인가를 그리워하고 감응을 잘 일으키게 하여 원초적 격정에 휩싸이게 하는 것이다. 촛불을 끄는 것으로 답추는 시작된다. 참가자들은 촛불이 꺼지는 순간 촛불과 달빛의 신비한 대조를 경험한다. 달빛이 그들을 온통 신성하게 둘러쌌다. 촛불 때문에 안으로 들어 올 수 없었던 달빛이 춤추며 흘러 들어와 답추장을 그득 메운 것이다. 목청 좋고 인물 좋은 여러 쌍의 남녀가 「첫정이 트이던 때」로 시작하는 애정시의 선창을 하면 참가자 모두가 그것을 따라한다. 이어서 꽹과리 소리가 들렸다.

  • 상쇠로 답추 행렬의 길을 트는 과정이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대오를 정열하지 않고 돌이를 할 때 그의 꽹과리는 추근추근 느리게 치는 길메구 가락이었다. 이어 점차 자연스런 대오가 잡히자 여기에 북과 장구가 더해져 행진 가락인 길군악으로 바뀌었다. 이때 땅의 수호신이 된 ‘야브말’이라는 주인공이 사람들을 위해 지상의 괴물들과 싸운 고난, 역경, 투쟁, 사랑, 승리의 내용을 담은 대서사시를 행진곡 풍으로 바꾼 노래가 이어진다. 답추에 동행하는 사람을 이끄는 갈세조와 용완매는 전천후 영통주의자靈通主義者다. 당차게 남을 이끄는 연기력과 때로는 폭발력 있는, 때로는 섬세한 가창력이 돋보인다. 낯빛을 달리하는 무수한 노래를 죄다 제 목소리에 맞게끔 불러낸다. 준수한 용모에 타고난 부드러운 미성美聲으로 부르는 두 사람의 노래들은 대중의 마음을 훔쳐내는 데 실패하는 법이 없다. 특히 갈세조는 인생도 제법 출렁이는 음악 생애를 살아온 것 같았다. 그의 노래 뒤에 한 번씩 하늘로 올라가는 어깨춤을 추면서 치는 꽹과리는 ‘갱자~ 갱자~’하는 표면의 소리 밑에 ‘쏼쏼~ 쏼쌀~“하는 소리와 함께 ‘지그지그, 자그자그, 디그디그, 다그다그’하는 재그재그 긁는 심층의 반주 음이 사람의 마음을 바닥으로부터 건드린다. 그 소리의 연상이 지상에서 천상으로 도약하는 것 같다. 그러면 음주가무꾼들은 모두 잡았던 손을 놓고 손뼉을 치며 몸을 들었다 놓았다한다. 그렇게 그 노래에 서로 화답해 함께 따라 부르면서 해가 도는 방향으로 빙빙 구르면서 돈다.

이번에는 북이 있었다. 역시 알타이 황금씨 족들은 음주가무에 남다른 신명을 천성으로 가진 모양이다. 이미 이들 민중에게는 축제가 사치가 아니라 삶의 본질로 작용하는 모양이다. 흰 옷에 희끗희끗한 머리를 뒤통수에 묶고, 큰 키의 점잖고 평범한 인상의 핵리발翮里魃은 노래할 때보다 북만 잡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북춤이 그를 남성미 넘치게 해준다. 그는 전신의 힘과 신명을 순식간에 북채에 밀어 넣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북과 함께 추는 춤은 정적궁이를 앞세워 전투처럼 답추단의 진격과 승리를 알리는 소리였으므로 자연히 동작이 크고 신명이 넘쳤다. 그가 북을 두드리면서 상체를 숙였다 폈다하며 흥을 돋우다가 한 번씩 질주하듯 양발을 번갈아 솟구쳐 뛰며 한번은 북편과 북태를 또 한 번은 북편을 치면서 추는 허허굿의 씩씩한 기상의 동작은, 땅위를 사뿐사뿐 내딛음이 새보다 가볍고, 허공을 향해 힘껏 뛰어오름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는 그것을 하늘의 열림과 화합, 기반, 도약의 순서로 진행했다.

 

맴 돌이가 한 번씩 탄력이 떨어지고 몸 안의 박동의 순환이 골에 다다르면 장구소리가 울려온다. 그러면 저절로 ‘얼쑤~, 절쑤~’하는 추임새가 들어가 다시 고양되기 시작한다. 반대로 마음의 가파른 마루를 치 올라갈 때는 ‘디기립~ 디기립~’하는 마차를 끄는 말들에게 박차를 가하는 듯한 소리와 동작이 나왔다. 순환이 더욱 빨라져 주기가 더 짧아지자 드디어는 정적만 있다. 북 가죽의 얇은 막에서 나는 낭랑한 소리에 흐느적거리는 율동의 세계만 있다.

방관자로서 바깥 세계에서 볼 때면 답추는 단순하고 싱겁기가 짝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춤을 추는 사람들의 육체적 움직임을 유희-운동-노동의 단계로 나눌 때, 이미 노동의 단계도 넘어서 무슨 강제됨에서 연유한 극심한 피로에 지쳐 진흙처럼 허우적거리는 외양은, 하루 놀면 사흘은 쉬어줘야 하는 춤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 안으로 한 발짝만 자원해서, 특히 술과 상상의 신 디오니소스의 지원을 받으면 더욱 좋은데, 왜냐하면 이들이 들숨과 날숨을 조정하기 위해 한 번씩 쳐다보는 보름달은 그대로 디오니소스가 되어 각자의 발꿈치 뒤를 계속 따라가 주고 있으므로, 그런 대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 땀벌창으로 서로가 손을 잡은 ‘우리’가 되어버리면 전혀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잡힐 듯 잡힐 듯 가믈가믈하게 기분 좋은 미로를 헤매다 곧 선회하는 송골매의 등에 올라타고 자작나무 숲으로 가려진 천국의 비밀정원을 맴도는 것 같은 황홀함을 느끼게 되었다.

원圓이라는 것이 말 해주는 바 그것은 가장 자연스럽고 힘이 솟아나는 대자연의 순환이다. 상쇠의 꽹과리 소리를 심장의 고동 소리로 삼은 사람들은 힘찬 피돌기를 바로 느끼는 자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거기에는 먼저 광물질에서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으로의 전환단계와 또 해체라는 그 역의 순환이 있고, 인간세계도 수렵․채집․어로를 위한 유랑의 세계에서 유목․농업․제조업에로의 세계로 상승하는 나선형 순환이 있다.

 

우주의 순환을 느끼게 해준 것은 단연 식물로부터 시작되었다. 식물은 동물보다 훨씬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우주를 만든 별의 첫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들과 지금 몸을 비비대며 함께 하고 있는 대지를 대표하는 자작나무가 가장 먼저 고양되어 수액의 힘찬 순환을 했다. 하늘을 대표하여 바람의 혼인 송골매의 선회를 필두로, 얼음․ 물․구름․비 공기의 순환이 있다. 이제 인간들의 순환이 있다. 인간은 자연물과 유리되게 만든 주범인 자의적恣意的인 언어 사용에 의해 자연을 어느 정도 조작하고 문화라는 걸 누리기는 하지만, 비록 의식은 하지 못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대자연이라는 실체와의 끈을 놓쳐버렸다. 그것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왕따가 되어 집단따돌림을 당하며 끝없이 표류하는 삶을 살도록 했다. 그 결과 모든 생명이 최종 귀착지인 자연으로 돌아갈 때 인간만이 가장 고통스럽게 죽어야 한다. 오늘 축제 동참자도 역시 심리기저에는 그런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것을 벗어나 말없이 다시 자연 그 자체가 되고 싶었다.

그들 스스로 내는 맴돌이의 열기는 표면적으로는 순간이나마 이 북국의 한랭한 기후와 음산한 지형, 아마 그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그들이 당면하는 냉혹한 운명에서 벗어나게 해주며, 덧없이 피어난 한 송이 꽃과 같은 그 순간성과 찰나성으로 하여 극히 일부는 허무와 절망으로 그리하여 방탕함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삶은 정녕 얼마나 고귀하고 숭엄한 것인가 하는 더욱 깊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축제는 순간적이나마 그들을 뜨거운 남국으로, 더 나아가 천상으로까지 진입시키게 해주고 있다. 이는 마치 오랜 걷기만으로 고행의 세계로 방황하다가, 말을 처음 탈 때, 또 다른 한 생명체와 혼연일체가 되어 새로운 세계로 몰입될 때의 신비한 미로가 주는 가믈가믈한 현玄의 세계로 나아감이었다. 물론 돌욕과 고정임도 이제 서로의 정체를 알아보려는 사소한 호기심까지도 벗어 던져버리고 자신들의 온몸을 군중들의 집단욕망 속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자연의 모습은 둥글고 인공은 네모나다. 그들은 중국인과는 달리 지표도 둥글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지표를 닮은 원을 그리고 또 그려서 먼지가 구름모양을 이루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번들거리도록 뛰고 빙빙 돌았다. 취할 흥興자 가운데 일一자字가 대지의 아래 위를 지평선처럼 잘랐다. 그들은 꿈틀대는 그 지평선을 밟아 주었다. 그걸 밟는 인간은 어깨가 굼실거리는 흥이 일었고, 대지도 흥이 나 자신의 무도舞蹈를 행했다. 여하튼 그들은 원에서 점차 더 큰 원을 그리면서 오직 돌고 또 돌며, 갈비까지 도랑이 패이도록, 무릎까지 먼지 흙이 되도록 춤을 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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