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의 집' 윤기 이사장이 요도바시교회 회의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이승민 특파원)
 ▲ '고향의 집' 윤기 이사장이 요도바시교회 회의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이승민 특파원)

[로컬세계 이승민 특파원] 지난 29일,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요도바시교회(淀橋教会)에서 오는 10월에 있을 목포공생원 윤학자 생탄 110주년 행사에 대한 준비회의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도쿄 요도바시교회 미네노(峰野龍弘) 목사, 오사카교회 다카다(高田義三) 목사 등 성직자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고향의 집 윤기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다우치 치즈코라고 하는 일본의 한 여성이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으로 극도로 어려운 시기에 목포에서 3000명 이상의 한국 고아들을 길러냈다. 하지만 당시의 반일풍조로 인해 상상도 못할 험난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한국 동란이 벌어져 북한 군이 목포를 점령했을 때는 여러번의 죽을 고비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목포시민들이 목숨 걸고 지켜주었고 어머니 장례식을 목포시민장으로 치러 애도해주었다. 어머니 생탄 110주년을 맞아 목포시민에 감사비를 세우려 한다”며 행사의 의미를 전했다.

 ▲ 목포 공생원
 ▲ 목포 공생원

이어 “아버지는 전도사였고 어머니 역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교회에서 오르간 반주로 봉사했다. 어머니는 힘들 때면 교회에 가서 찬송가를 연주하는 것이 즐거움이었고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공생원이 어려울 때는 기독교인들의 도움이 컸다. 기독교와 공생원은 깊은 인연이 있다”고 말했다.

또 “올 10월 생탄 행사에는 어머니가 길러낸 고아 숫자에 의미를 두었다. 일본에서 3000명을 모집하여 목포 공생원 행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보았다. 목사님들께 협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일본인 윤학자(일본명 田内千鶴子)는 1912년 10월 31일 일본 시코쿠 고치현 고치시 와카마쓰초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7세 때인 1919년 조선총독부 목포부청 관리였던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양친과 함께 조선으로 이주하였다.

1931년 목포 고등여학교를 졸업, 1932년 목포 정명여학교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하였다. 당시 목포에는 윤치호(尹致浩, 1909 ~ 1951?)라는 기독교 전도사가 공생원을 만들어 고아들을 돌보고 있었다.

 ▲ 윤학자 원장이 오르간 반주를 하면서 고아들과 함께 노래하고 있다.
 ▲ 윤학자 원장이 오르간 반주를 하면서 고아들과 함께 노래하고 있다.

고등여학교 은사의 소개로 고아원 봉사를 제안받아 1936년부터 음악과 일본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던 중 공생원 원장 윤치호와 1938년 10월 15일 결혼하였다. 남편 윤치호와 함께 공생원 운영을 하면서 수많은 고아들의 어머니가 되어 돌봤다.

1951년 1월 전남도청으로 식량 지원을 요청하러 간 남편 윤치호가 행방불명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 후로도 숱한 어려움 속에서 홀로 공생원을 지키며 고아 구제에 일생을 헌신했다. 1963년 8월 15일 한국 정부로부터 일본인 최초로 문화훈장 국민장을 수여받았고, 1968년 5월 8일에는 전라남도에서 장한 어머니 상을 수여했다. 1967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남수포장(藍綬褒章)을 받았고 1965년에는 목포시에서 ‘목포 시민의 상’을 제정, 첫 수상자가 되었다.

한국 고아의 어머니(韓国孤児の母)로 불렸던 그녀는 1968년 10월 31일 58세가 되던 생일날 숨을 거뒀다. 부모 잃은 고아들을 모아 먹이고 입히고 사랑을 베풀다가 더 사랑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목포시 최초 시민장으로 치러졌고 목포역 광장에는 3만여 명의 목포시민이 운집해 이별의 슬픔을 애도했다. 당시 목포시의 인구는 16만여 명이었다. 묘지는 남편 윤치호의 고향인 함평군 대동면 옥동 마을에 있다.

공생원은 지금도 목포에서 운영 중이며 일본 정재계 인사들이 내한하면 단골 방문지이기도 하다. 그녀가 운명 당시 우메보시(매실장아찌)가 먹고 싶다는 유언에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는 고향 군마에서 매화나무 20그루를 선물로 보냈고, 2008년 공생원 창립 80주년 행사 때는 아내인 오부치 치즈코 여사가 방문하기도 했다.

 ▲ 윤기 이사장이 동포 노인의 집으로 세운 고향의 집 교토
 ▲ 윤기 이사장이 동포 노인의 집으로 세운 고향의 집 교토

한편 장남인 윤기 이사장(고향의 집)은 부모님의 뜻을 이어받아 공생원을 지키며 고아들을 돌봤고, 41세가 되던 해에는 어머니의 나라 일본으로 건너가 동포 노인의 집을 설립하여 재일동포 노인복지 향상에 전념했다.

오직 고아들과 노인들을 위해 진력해온 삶이 올해로 80세다. 부모가 있으면서도 고아원에서 태어나 자랐고 고아들을 위해 살아온 한국에서의 40년, 어머니의 나라에 와서는 외로운 동포 노인들의 웃음을 찾아주기 위해 몸부림쳐 살아온 일본에서의 40년을 맞았다.

또한 전 세계 고아 1억 5천 만 명이 생활고에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알리고 지원하기 위해 각종 학술대회와 서명운동을 통해 사회적인 지지를 호소해온 그가 110주년 기념식에서는 UN에 ‘세계 고아의 날’ 제정을 촉구하는 이벤트를 가질 예정이다. 지난 2018년에는 유엔 세계 고아의 날 제정 청원을 위한 뉴욕대회를 개최했고, 2020년부터는 유엔 세계 고아의 날 제정추진위원회에 한국의 국민 배우 이순재 씨를 총재로 위촉해 활발한 고아사랑운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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