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모체가 된 ‘관세동맹 베네룩스3국’ 일원
인구 남한의 5분 1 수준 ‘국민소득은 4만불 상회’
다민족‧다언어 국가…네덜란드‧프랑스‧독일어 공용
1993년 헌법개정 연방국가로 폭넓게 자치권 허용

 ▲ 벨기에의 전체 면적은 대한민국의 30% 정도인 33,990㎢로 저지대를 뺀 온전한 땅만을 취한다면 30,528㎢이다. geo-ref.net

● 유럽연합 태동의 모태가 되다.
초현실주의 회화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와 영화 ‘로마의 휴일’로 친숙한 여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출생한 나라 벨기에! 유럽의 북서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북해와 근접해 있는 입헌 군주국 ‘벨기에 왕국(Kingdom of Belgium)’은 네덜란드, 프랑스, 룩셈부르크,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베네룩스 3국 중 하나이다. 

 ▲ 베네룩스(Benelux)는 유럽의 벨기에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의 세 나라 지역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envoyexcellency.com/benelux

베네룩스(Benelux)는 유럽의 벨기에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의 세 나라 지역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세 나라의 정부가 영국에 망명 중이던 1944년, 세 나라간의 관세동맹을 맺으면서 세 나라의 이름을 따서 지으면서 부르기 시작했다. 

관세 동맹은 1948년부터 발효되어 세 나라 간의 관세 철폐와 제3국에 대한 공통 관세의 내용을 담고 있다. 1960년에는 지역 내에서 노동‧자본‧서비스‧상품 등의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하는 ‘베네룩스경제연합’(Benelux Economic Union)으로 발전했다. 베네룩스 3국은 현재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른 어떤 나라들 간의 연합보다도 더 끈끈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베네룩스는 1951년의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ECSC)와 1957년의 유럽 경제 공동체(EEC)를 거쳐 유럽연합(European Union)을 만드는 시발점이 되었다. 현재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에 ‘유럽연합’ 본부가 위치하여 있는 것만으로도 능히 그 위상이 짐작이 간다. 

벨기에의 전체 면적은 대한민국의 30% 정도인 33,990㎢로 저지대를 뺀 온전한 땅만을 취한다면 30,528㎢이다. 인구는 1,178만명(2021.7/CIA 추정) 정도이며, 최근 1인당 국민소득은 2019년에 46,400불로 보고된다.

인구는 남한의 5분 1 수준이지만 강대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가 비슷하고 자원빈국이며 GDP(국민총소득)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이 높다는 공통점, 또 대륙 안에 교통의 요지로 주변 강국의 침략이 잦았다는 것도 중국과 일본, 몽고 등의 침탈이 많았던 우리의 역사와 비슷하다. 

이 나라의 국민의 대부분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거의 로마 가톨릭교회(75%) 소속이다. 그 밖에도 정교회나 개신교 종파가 존재하며, 이민자들로 인해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도 존재하고 있다.

 ▲ ‘로마의 휴일’로 친숙한 여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출생한 나라 벨기에!
 ▲ ‘로마의 휴일’로 친숙한 여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출생한 나라 벨기에!

● 유럽연합 본부 및 각종 세계기구 포진

벨기에는 1993년 11월 1일 유럽연합이 탄생되면서 유럽연합의 본부가 설치된 나라이기도 하다. 유럽연합(EU)의 실질적인 집행기구인 유럽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유럽 의회(European Parliament)등이 위치해 있는 브뤼셀은, 브뤼셀 국제공항에서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또한 유럽의 심장 브뤼셀에는 베네룩스(Benelux) 사무국,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 유럽연합군 최고사령부(SHAPE) 본부를 비롯하여 세계관세기구(WCO) 등 약 120여개의 국제기구와 코임브라 그룹(Coimbra Group, 유럽 선도 대학들의 네트워크) 등 1,500여개의 NGO 및 2,000여개의 외국기업이 수없이 포진하여 있다. 이처럼, 브뤼셀에는 수많은 기타 국제기구와 다국적기업의 본부가 있고, 늘 언론인들의 주목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벨기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국토 피해를 가장 많이 본 나라이고,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을 당해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다. 특히 벨기에 루뱅(Louvain) 지역에서는 독일군이 자행한 학살로 많은 시민들이 무고하게 죽었다. 벨기에 사람들은 이를 루뱅 시 학살 사건이라 하여 추념하며, 루뱅에서는 지금도 독일 국기를 게양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한국과는 1965년 5월 2일 대사급 외교관계 체결에 합의한 후, 우리 측은 동년 11월 1일 주 벨기에 상주대사관을 개설(주 유럽연합 대표부 겸임) 하였다. 벨기에 측은 1970년 2월 24일 주한 초대 대사가 부임하였다. 

벨기에는 한국전에 연인원 3,400여명의 전투병을 파병하였다. 이들은 미 제3사단 예하 영국 제29보병여단에 배속돼 임진강 전투, 학당리 전투, 자골 전투 등에 참가했으며, 참전자 가운데 106명이 전사하고 350명이 부상하는 등 큰 희생을 치렀다.

 ▲ 한국전 참전을 결정한 당시 ‘앙리 모로 드 믈랑’은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파병부대의 일원으로 직접 총을 들고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참전 지원병 1개 대대 700명을 모집하는데 2,000여명이 지원하였으며, 이들 가운데는 다수의 귀족 출신 젊은이들도 장교가 아닌 일반 병사로 참전하였다. 여기에는 상원의원이자 국방장관이었던 ‘앙리 모로 드 믈랑(Henry Moreau de Melen)’ 예비역 소령도 있었다. 한국전 참전을 결정한 당시 ‘앙리 모로 드 믈랑’은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파병부대의 일원으로 직접 총을 들고 한국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그들은 블리스 오블리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최고의 인류애를 실천한 것이다.

대한민국과의 민간 교류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로 주축이 되어 1952년 4월 5일에 발족한 한국참전용사회, 각계 저명인사와 한국고아 입양부모들로 구성되어 1975년 5월 15일에 발족한 벨기에·한국친선협회를 비롯하여 의원친선협회·경제협력위원회 등이 양 국민간의 교류를 돕고 있다.

 ▲ 현재 국왕은 필리프 1세다. 가족사진 monarchie.be

● 1993년 헌법개정으로 ‘연방국가’

벨기에는 서유럽의 입헌국주제와는 다소 특성을 달리한다.  정치적으로는 의원현재 국왕은 필리프 1세다. 내각제를 실행하고 있다. 현재 총리는 벨기에의 기업인 출신 정치인으로, 알렉산더르 더크로(Alexander De Croo)가 2020년 10월 이래 총리직을 맡고 있다.
1993년 8월 9일 알베르 2세(His Majesty Albert Ⅱ) 국왕이 즉위하였고, 2013년 7월 필리프(His Majesty Philippe) 국왕이 즉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벨기에 국왕의 공식 칭호는 벨기에인의 왕인데, 이는 벨기에의 국왕이 주변국의 국왕과 달리 벨기에 혁명을 통한 벨기에인들의 총의로 추대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명목상 국민의 신임에 관계없이 권좌에 오른 다른 나라의 국왕과 달리 벨기에의 국왕은 국민에게서 신임 받아 그 자리에 있는 셈이다. 이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로, 벨기에 국왕은 즉위할 때 공화국의 대통령처럼 의회에서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내용의 즉위 선서를 한다.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4년의 상원(74석)과 하원(150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은 기민당, 자유당, 사회당 등이다. 벨기에는 언어 사용 지역별로 지역주의가 굉장히 강하며, 벨기에 노동당을 제외한 다른 모든 원내 정당은 지역정당이다. 

벨기에는 1830년 독립 이후 다층적 균열구조를 극복하기 위하여 협치주의에 입각한 정치통합을 이루어 왔고, 마침내 1993년 헌법 개정을 통하여 연방국가가 되었다. 벨기에 의회는 동년 4월 23일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면서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지방분권적 연방국가로 전환하는 헌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상하 양원이 이날 통과시킨 헌법개정안은 지난 수세기 동안 갈등과 반목을 빚어온 네덜란드어권(북부 플랑드르지방)과 프랑스어권(남부 발롱지방) 그리고 공동언어권(브뤼셀) 지역에 좀 더 광범위한 자치권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모두35개항으로 된 이 개헌안은 중앙정부가 외교, 국방, 통화, 사회복지 등 주요정책에 관한 통제권만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들 세 지역에게는 환경‧무역‧농업‧과학연구 등 분야에까지 자치권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권력의 분산과 분립, 권력기관 사이의 견제, 지방정부의 자율성 등을 내용으로 하는 연방주의는 중앙집권형 국가의 조직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간주된다. 현재 벨기에는 법적 수도인 브뤼셀 시를 포함한 19개 지방 자치체로 구성되어 있다.

 ▲ 현재 벨기에의 공식 공용어는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이다. 네덜란드어 사용 인구는 대략 전 국민의 59%이고, 프랑스어 인구는 40%, 독일어 인구는 1% 정도다. brussels-express.eu/

● 3개의 언어가 공존 ‘다민족 국가’ 

벨기에는 유럽에서도 비교적 안정된 나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에서 언어와 인종의 뿌리에 대한 대립이 존재한다. 현재 벨기에의 공식 공용어는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이다. 네덜란드어 사용 인구는 대략 전 국민의 59%이고, 프랑스어 인구는 40%, 독일어 인구는 1% 정도다.

현재 국민 중 600만여 명이 네덜란드어, 400만여 명이 프랑스어를 쓰며 독일 접경지역의 7만3,000명은 독일어를 사용한다. 독일어 사용지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벨기에가 독일로부터 할양받은 지역이다.

언어는 지역별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북부의 플란더스(Flanders) 지방이 네덜란드어, 남쪽의 왈롱(Wallonie) 지방이 프랑스어 지역이며, 동부 독일 국경지대에 소수의 독일어 인구가 살고 있다. 수도인 브뤼셀은 북부에 있지만 프랑스어 사용 인구가 85%로 더 많다.

벨기에가 여러 언어권이 합쳐진 것은 오랜 역사 과정 때문이다. 벨기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켈트족(갈리아)과 게르만족이 이동하며 교차하던 지역이다. 그 흔적이 오늘날 언어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원민족인 켈트족 지역이 왈롱 지역이고, 게르만의 일파가 살던 지역이 플란더스 지역이다.
이 나라의 역사는 1830년에 네덜란드에서 독립해 190년밖에 되지 않았다. 독립 당시 헌법은 언어에 대한 자유를 선언했지만, 네덜란드에서 독립할 때 남부 왈롱 지역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에 프랑스어가 공용어이었다. 때문에 20세기 중반까지 공공기관에서는 프랑스어만 사용해 왔다. 헌법도 프랑스어 버전만 있었다. 헌법으로 언어의 자유를 인정해놓고 실제로는 프랑스어를 강요한 것이다. 

초기에 북부 플란더스 지방은 한때 서유럽 무역의 거점으로 화려하게 번영하였으나 전통 산업인 모직물 공업이 쇠락하는 등 지독한 경제난을 겪고 남부 왈롱인들에게 거지 취급을 받는 고초를 겪었다. 

이처럼 과거에는 석탄과 철강 산업을 바탕으로 한 왈롱 경제가 앞섰다. 그러나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섬유산업에서 물류와 석유화학으로 업종을 변경한 플랑드르가 1980년대 이후 경제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더욱이 관광과 금융으로 되살아난 플란더스 경제가 화려한 부활을 하면서 전세가 완전히 역전돼 버린 것이다.

인구의 60%가 네덜란드어를 사용하고 있는데다, 이런 경제력 우위를 배경으로 북부 플란더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찾자며 언어차별 철폐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로 네덜란드어권이 공식화되었다. 네덜란드어 버전의 헌법이 나온 것은 1967년이었다. 독일어 버전은 1991년에야 나왔다.

현재 브뤼셀은 법적으로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모두 공용어로 지정된 이중 언어 지역이며, 모든 거리의 표지판이나 각종 공공기관의 명칭은 두 가지 언어로 표기된다. 특히 브뤼셀의 프랑스어권 학교 학생은 의무적으로 네덜란드어를 제1공용어로 배워야 한다. 국민 화합을 위해 네덜란드어권은 제1외국어로 프랑스어를, 프랑스어권은 제1외국어를 네덜란드어를 학습한다. 

이에 대국민통합의 구심점인 벨기에 왕실은 응당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모두 구사해야 하며, 미스 벨기에 역시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브뤼셀 및 연방 의회에는 의무적으로 뒤편에 통역 부스가 있다. 타 지방 의원들이 연설 및 발언할 때, 의원들은 좌석에서 통역 버튼을 누르고 헤드셋을 착용하고 듣는다.

또한 공용어가 세 개이기 때문에 벨기에의 국가 1절은 프랑스어, 2절은 독일어, 3절은 네덜란드어로 작사되었다. 그리고 독일어는 사용 인구가 적기 때문에 연방정부에서도 극히 일부 분야에서만 독일어 문서를 배포하고 있다. 

소정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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